이런 건축물이 가나자와에 세워져 있다!!

 

이시가와 호국 신사 앞에 세워진 [대동아 성전대비] 철거 요구

 

기단 : 4미터, 너비 3미터, 지하 철근콘크리트 지상암반기초높이2미터

석비 : 높이 1미터의 10단층

기단과 석비의 총높이 12미터

(사진 참조)

 

우 비석문의 뜻

    [대동아 공영권]을 건설하기 위하여

    천황이 시작한 전쟁은

    영원히 계속될

    역사를 비추는 본보기이다.

 

좌 비석문의 뜻

    전국에 이르는 곳마다 천황에게 충성함을 맹세한 사람들이 모여 성전을                                 

    찬송한는 비석이 이시가와 호국 신사에 건립되었다.

    (중략)

    [대동아 전쟁]을 마음속으로 찬송하며 후세에 전하자.

    이 위업은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 비석은 결코 전쟁전,전쟁중에 만들어 진것이 아닌

20세기말 2000 8 4일에 가나자와에 세워진 것이다.

 

 

 

 

 

[대동아 성전대비]

가나자와시 중심(켄로크엔 ) 있는 이시가와 호국신사의 참배 길에 세워진 비석을 가르킵니다. 비석의 정면에는 <태양기> <대동아 성전대비>,뒷면에는 <팔광위우>라는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팔광위우> 뜻은 <전세계를 천황의 치하에 유일한 가정을 이룩한다 >라는

으로 뒤면의 비석에 세겨진 글로 <대동아 전쟁은 인간세상의 -천황에 의하여 수행된 성전, 다시 말하면 숭고한 전쟁이었다.>라고 하는 찬송의 글입니다.높이가

12미터나 되는 비석이 제막된 것은 2000 8 4일은 일입니다

 

건립경위

비석은 1995년에 열린 국회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행위가 이시아 여러 국민에게 가져다준 고통은 인식하고, 반성함을 표명한다>라고 하는 <전후50 결의> 채택된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결의에 대하여 <망국의 사죄>라고 노한 <일본을 지키는 > <이와 같은 망국의 상태에의 반격은 수천만의 구설에 의해 먼저 비석을 세우는 것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하면서 건립위원을 결성하고 전국에 기부를 호소하였습니다. 호소에 대하여 <이시가와현 군인은급 연맹> <의족연합회> <너무 크다><(¹)자는 필요없다><호국신사에 이런것을 세우지

말라> 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모인 기부금은 총공사비 1억엔의 예산을 크게 미치지 못하여, 건립의 중심인물들의 개인적 부담에 의해 이루어 졌다고 합니다.

이와같이, 전쟁체험자나 의족의 완전한 지지를 얻지 못한 채로 겨우 완성하여, 신도의 의식에 따라 준공식을 거행되었습니다.

 

문제1왜곡된 역사관

비석의 건립자가 이미 지나간 전쟁을 <성전(숭고한 전쟁)>이었다고 하는 것은, <일본은 유럽 미국의 식민지 였던 아시아각국을 해방, 독립시키기 위한 전쟁이었

.또한 이때 일본이 만든 시설이 아시아 산업의 기반이 되었다>라고 하는 <아시아 해방론>이라는 사고방식 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시아 해방론>, 일본이 아시아E태평양 지역의 국가 또는 지역에 요구하지도 않은 군대를  파견한 사실을 정당화 하기 위해 만든 구실에 불과합니다. 이유는 전쟁은 <대동아 공영권> 이라고 하는 일본의 권익을 확보하는 것이야 말로 그들의 최대의 목표로서 삼아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함부로 행해진 군대 파견을 마치 상대국가를 위하여 일인듯 사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밖에 없습니다.

 만약 <아시아 해방> 진실한 목적이라 한다면, 일본은 당시 일본의 식민지 였던 조선과 대만을 제일 먼저 독립E해방시키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마직막까지 손을 놓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문제2정국신사(–õ‘_ŽÐ)마저 거절당한@비석

 아사히 신문의 보도에 의하면 최초 비석은 정국신사또는 황거앞 광장에 세워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그것이 거절되어 부득이하게 이시가와@호국신사

의뢰한 결과, 호국신사의 의원회가 만장일치로 승낙을 결정하였다고 합니다.

 신청이 승낙받지 못한 것은 정국신사나 궁내청 역시 전쟁을 <성전>이라고 인정할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석은 뒷면의 <팔광일우> 글귀는 <천황> <전쟁> 직결하는 사상을 나타내고 있고, 이러한 비석의 존재에 의해, 천황의 전쟁에 대한 책임 문제가 제기될 것을 피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것이 수도 동경에서 일어난다면, 헌법상의 문제나 국제적인 비난을 불러 일으키는, 새로운 경동의 씨앗이 되는 것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정국신사에서도 거절할 밖에 없었던 것이 이시가와현이 관리하는 도시공원의 중심에 세워진 것입니다.

   

 

전쟁의 미화에 반대하며,아시아 각국E지역과 한마음으로 손을 맞잡을수 있는 길을 선택하기 위해       <대동아 성전대비> 철거를 바랍니다.

  비석에 의문을 갖고 있는 있던 시민E협회E시회의원E변호사E노동자 단체등이 모인(<대동아 성전대비> 철거를 바라며,@전쟁의 미화를 용서하지 않는 이시가

@현민의 회)@(<성전비석>철거회)@를 결성하여,@철거를 요구하는 대전을 시작

하였습니다. 토지의 소유자는 이시가와 호국신사이지만 당시, 이시가와현이 토지를 빌려 <혼다의 산림공원>으로서 관리하고 있었습니다. 도시공원법에 의해 결정된 <공원 지역설치 허가신청서>를 받아 들인 이시가와현 당국은, 설치목적이 <영령과 역사현창>으로 되어있어 비석으로서 <대동아 성전대비>로 새겨진 것을 알면서,

<비석의 내용은 심사요건이 아니다>라는 이유로, 사실상 무심사로 허가를 낸 것입니다.

 <철거회>는 현당국과의 교섭을 거듭하고, 현의회에 이 문제를 건의하여, 현은 <비문을 검사하지 않고 허가 한 것은 현의 실수> 또는 <비문의 내용은 도시 공원내에 존재하기에는 부적절한 것이다>등 스스로 책임의 일부를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현은 빌린 토지를 호국신사에 반환하는 것으로, 비석의 현소재지를 도시공원으로부터 이전하여 사태를 수습을 도모, 책임을 포기하려고도 했습니다.

토지를 반환한 것으로, 비석의 설치를 허가한 책임은 면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은 현의 책임을 계속하여 추궁함과 동시에, 2 3 <성전대비>가 다시 나타날수 있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 일본국내는 물론 세계를 향해 이 비석이 가진 의미와 위험성을 호소하려 합니다.

  우리들은 <대동아 성전 대비>가 이시가와 현에 세워진 것을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건립을 허가한 것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원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철거를 바라는 운동이 발족한 것에 의해, 만날 기회가 없었던, 비석의 출현에 의해 의념과 위기감을 안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손을 잡고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 비석의 건립이 초래한 문제점은, 건립지인 이시가현의 시민이 주체적으로 맡아 해결해 가야 할 문제임이 틀림없습니다. 이것을 위해서야 이 회가 발족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시가와 현민만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합니다. 우리들은 이 문제를 일본과 세계의 평화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 나갈려고 합니다.

  이 운동은 비석의 철거을 바라는 운동으로서 시작되었지만, 이 운동이 그 목적만으로 종결되지 않고, 이것을 첫걸음으로 이시가와현이 평화운동이 큰 기점이 되어 가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전쟁에 반대하고 평화를 바라는 염원을 저희들의 운동에 기울여 주십시오.

 

<대동아 성전대비> 의 철거를 바라고, 전쟁의  미화를용서하지 않는 회 (<성전대비> 철거회)

                    사무국 920-0024 가나자와시 사이넨3-5-5 프렌드파크 5

                                                     이시가와평화운동센타

 

E-mail peacenet@aqua.ocn.ne.jp

                                    홈페이지http://ishikawa-heiwa-center.gr.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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